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추억

돌이켜 보면,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한 이래 한글 워드프로세서을 여럿 사용해 온 것 같지만 정작 몇 가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오늘날까지 사용하는 한/글(아래아 한글) 그리고 Word를 손에 잡은 이후 다른 워드프로세서는 결국 손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사이 잠시 주요한 위치를 점했던 것은 Mac OS 환경에서의 Nisus Writer였다. 하지만 어느 날 거의 1 년 가까이 작성해오면 학위 논문 파일이 오류가 나면서, 다시 한/글로 옮겨가는 사태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Mac OS X 환경에서 세 가지 주요 워드 프로세싱 어플리케이션이 사용된다. 블로그 작성 등의 용도로 MacJournal, 집필 작업을 위한 Scrivener, 그리고 일상 문서 및 집필 작업을 위한 Word가 있으며, 당연히 물리적 혹은 가상 Windows 환경에서 사용하는 한/글이 있다.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한글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처음 들어 본 것이 보석글이었다. 삼보 컴퓨터에서 번들했던 워드프로세서였는데 처음에는 국산 한글 워드프로세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외산 워드프로세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기사도 본 것 같다. 아무튼 1990년 즈음 IBM-PC에서 보석글은 표준이다시피 했다. 삼보 컴퓨터가 삼성이나 LG를 제치고 거의 선두로 나서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큐닉스의 PC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번들된 으뜸글이라는 한글 워드 프록세서를 사용했다. 당시 학교의 모든 컴퓨터는 큐닉스 제품이었다. 물론 아래아 한글이라는 국산 한글 워드 프로세서의 등장은 알고 있었지만 보석글이든 으뜸글이든 다른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나 역시 한/글 1.0를 잠시 사용해 본 느낌은 굳이 이전 제품을 바꿀 필요성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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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전 1.5를 접하고서는 이전에 비해 훨씬 개선되었고 또한 안정적이었다. 덕분에 조금씩 사용 시간이 늘게 되고 어느새 나를 포함한 주변에서 한/글이 아닌 다른 워드프로세서를 찾기가 더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글 2.0이 등장하면서 MS-DOS 시장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천하 통일이 되었다. 물론 삼성의 훈민정음이나 금성의 하나워드 등 대기업의 자체 워드프로세서가 일정 부분 사용되기는 했지만, 이미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거침없던 한/글의 위상도 DOS에서 Windows를 플랫폼이 바뀌면서 Word for Windows의 등장으로 만만치 경쟁자를 만나게 됨으로써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결과는 한/글의 또 다른 위기로 이어졌다. 개발사에서는 Windows 버전을 출시했지만, 상대는 Word가 아닌 Office였다. 워드 프로세서의 기능만으로 Word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고 많은 호응과 지원을 얻기는 했지만 Excel이나 Power Point 등 Windows 환경에서 업무용 프로그램으로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이 문제였다.

이후 어렵게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는 한/글이 여전히 위상을 지키고 있었지만 기업 등 업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IMF 시기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는 대신 한/글 개발을 포기하는 황당한 계약 추진이 알려지면서 난리가 난다. 결국 계약은 취소 되었고 한/글 구하기 운동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덕분에 살아 남게 된 한컴은 지금까지 한/글하면 떠오르는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한/글 97이 출시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당시에 다소 고민을 해야 했는데, 메인 시스템이 DOS나 Windows가 아니 HP-UX를 사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글 워드 프로세서는 SoftPC 즉 PC 에물레이터를 사용하여 DOS 버전 한/글을 사용하고 있었다. 때 마침 UNIX 지원 한/글이 출시가 되어 구입을 고려했는데, 속도면에서 에물레이터를 사용하여 운용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다소 황당한 결과에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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