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 폰에 유선 이어폰을 연결하고 있는 경우는 나 외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어쩌다 한 명 보게 된다면 운좋은 날이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그나마 나이가 꽤 든 노인분이 대부분이다. 길을 걷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 유선 이어폰을 낀 나를 쳐다 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내 주변도 다르지 않다. 아내도 수년 전에 내가 선물에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무선 이어폰을 아직까지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우선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적다 보니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물론 차 안에서도 따로 이어폰을 연결할 일은 없다. 이어폰 자체의 필요성이 앞서 언급한 가끔씩 이용하는 전철이나 버스 그리고 혼자 산책이나 등산할 때이다. 하지만 산책이나 등산을 혼자할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가격대비 효용성을 인정하지 못하니 구입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이유라면 연결, 즉 인터페이스의 기능에 있어 무선 보다는 유선을 지극히 선호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나 네트워크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선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는 편의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특별한 문제없이 잘 작동하는-기존 인터페이스를 전환하는 꽤나 귀찮은 일이다. 물론 이런 상황도 최근 노트북 컴퓨터이 대세가 되면서 시간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하더라도 무선 인터페이스의 기능이나 신뢰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긴 하지만 음향이나 음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런 생산성 없는 논란의 이유 때문도 아니다. 어차피 디지털 데이터를 주고 받는 상황에서 이런 저런 주변 상황은 자칭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에게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내겐 음질도 와인이나 커피 마냥 괜한 의미 부여로 보일 뿐이다. 이런 생각도 이른바 아재 등급에 오른 덕분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내게도 무선 이어폰이 비교와 선택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음질
디지털 데이터 전송에 있어 유선이 무선 보다 안정적이며 더 뛰어난 음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굳이 기술적 사양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선 연결은 유선 연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네트워크 기반 실시간 오디오 정보라면 더욱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음질 차이는 이어폰 자체의 문제가 아닌 무선 연결이라는 근본적 기술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유사한 수준의 제품 간 비교에 한해 적용될 수 있다. 편의점에서 파는 1만원대 수준의 유선 이어폰을 십수만원하는(저가라고 평가받는) 무선 이어폰과 비교하여 음질을 논할 수는 없다. 최소한 내가 사용하는 애플 이어팟 정도를 가지고 보급형 무선 이어폰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약 3만원 수준의 애플 이어팟을 20 ~ 30만원대 애플 에어팟 제품과 비교할 수는 없다. 블루투스 연결 환경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에어팟의 음질이 이어팟 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는 당연한 것이다. 다만 동일한 애플의 기술에 의한 제품이니 일반 사용자라면 전반적으로-정량적 평가에 따른 차이에도 불구하고-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이 가격은 음질이라기 보다는 무선 기능의 편의성에 부여된 것이다.
가격
굳이 따로 가격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당연히 애플의 제품은 물론 일반적인 브랜드 제품으로 무선 이어폰이 월등히 비싸기 때문이다. 다만 특히 애플 에어팟은 가격이 삼성이나 LG 제품에 비해서도 훨씬 높으니 처음 구입에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무선 이이폰이 주는 효용성을 경험한 입장에서 거의 10배에 달하는 가격 차이는 충분한 가치가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도 이미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이어팟 유선 이어폰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고민의 대상은 아니다. 백만원이 훌쩍 넘는 아이폰을 사면서 이어팟과 에어팟 사이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 라이트닝 포트가 유지된다면 이전 아이폰에서 사용한 이어팟을 계속 사용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애플의 계획에 따라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 삼성 등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아직 기본 사양에 포함된 유선 이어폰이 언제 사라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무선 이어폰의 가격은 선택이 아닌 구매자의 필수적 부담이 될 것이다. 그나마 어이없게도 에어팟은 아이폰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값싼 애플 제품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에어팟이 처음 출시 되었을 당시 가격은 현재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디자인 & 편의성
이어팟이 아닌 에어팟, 유선 이어폰이 아닌 무선 이어폰을 선호를 넘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디자인과 편의성 때문일 것이다. 선이란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걸로 생각했던 시절에는 불편함이나 거추장스러움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선 이어폰을 끼고 나서는 수십년 선에 의해 가려진 작은 하지만 유동적인 공간적 방해 요소가 사라졌음을 체감하게 되었다. 작은 요소라고 할 수 있지만 삶에 비교할 수없는 자유도를 높여주었다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사용하는 이나 사용하는 이를 보는 이나 그 간지스러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한번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게 되면 쉽사리 유선 세상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무선 이어폰의 충전이라는 필수 과정을 요구된다. 스마트 폰은 물론 노트북 컴퓨터도 충전해야 사용할 수 있는 마당에 당연한 절차 아니냐고 하겠지만 크기가 작을 수록 충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잊기 쉽다. 고급 제품일 수록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니 더 자주 충전해야 한고 덕분에 충전 장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무선 이어폰 충전 그리고 보관을 위한 별도 케이스나 크래들은 무선 이어폰 자체의 분실 위험과 동일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관리하지 않는다면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애플 에어팟이라면.
- - - - -
아이폰 SE 2세대를 사용한 지 3년이 넘어가니 곧 교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다음 번 나의 선택이 에어팟이 될 것인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혹은 에어팟을 구매하고도 여전히 이어팟을 더 선호할 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분명 이어팟 케이블 즉 유선이 주는 나름의 역동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달릴 때 적당히 흔들리는 이어폰 케이블은 내가 볼 때 꽤나 매력적이다. 무언가 열심히 한다는 그 자체의 대상으로 얼굴과 몸에 부딪히는 감각이 좋다.
이러한 취향은 이전 아이팟 나노를 팔에 달고 뛰면서부터 였다. 아이팟 나노의 가벼움은 달릴 때 아이폰이 주는 무게감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제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오기에 충분한 날이다. 다시 거추장스러운 유선 이어폰 케이블을 휘날리며 달릴 때가 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