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내 책상 가운데 하나 위에 놓여진 커다랗고 시끄러운 금속 상자와 그 옆 낯선 화면을 보면서 과연 이게 뭔지 의아스러워 한다. 그리고 그 옆에 커다랗게 그리고 화려하게 새겨진 HP 로고를 보고 나면, 별나 컴퓨터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질문을 하든 나의 무려 20년을 한참 지난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이라는 답에 극단의 반응을 보인다. 우선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리고 뭔가 대단 한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후자는 반드시 왜 아직까지 그런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가 묻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 질문에 난 언제나 그저 아직 작동하고 있으니 사용할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관련된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대화는 양 측의 관심이 최소한 공유되는 점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 답은 온전한가 ? 실상 제대로 된 답이 아니다. 20년을 훌쩍 넘은 구형 시스템이다 보니 정상적 작동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가 있다. 특히 이런 시스템은 운용과 함께 관리가 매우 주요한데 10년 가까이 관리 부재 상태 였다. 그리고 현재 상태는 매우 위태롭다. 특히 메모리 모듈의 오류와 냉각팬 상태가 심각하다. 냉각팬이 없으면 내부 발열 처리 문제로 인한 시스템 성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팬 상태에 문제가 있거나 장착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경고를 보내며 작동을 멈춘다. 메모리 모듈 문제는 본체에 대한 작은 충격에도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는 상황이라 조심해서 다뤄야 할 지경이다. 어쨌든-더 이상 비용 부담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마지막 활약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니 사실 추억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의 산물일 뿐이다.
20년도 넘은 시절 유닉스 시스템 가운데 이른바 주류 모델은 엄청난 무게를 자랑했다. 덕분에 내부 상황을 보거나 부품 탈부착에 절차나 방법은 어렵지 않다하더라도 꽤나 육체적 부담이 크다. 더욱이 전용 공구가 없다면 분리가 불가능한 요소도 많이 숨어있다보니 관리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추억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 생산성 문제를 대입할 수는 없다.
그나마 아직 이 시스템에서 운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미디어와 라이센스 코드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 운용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말 그대로 고철 덩어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않다면 커다른 장식물로나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어플리케이션 역시 이미 20년 넘은 것이다보니 같은 이름의 최근 버전과 비교할 수 없을 뿐더러 매우 느릴 수 밖에 없다. 당시 PC에 비해 엄청난 메모리를 탑재할 수 있었지만, 최근과 비교해 보자면 일반적 용량의 PC 조차 그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남은 건 고민이다. 모든 물리적 특성은 이제 기나긴 추억의 장난을 멈춰야 할 시간임을 알려주고 있다. 합리적이지 않은 투자로 시간을 연장하거나 다른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비용 대비 효용성이 명확하니 자신을 설득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이 글이 나의 결정에 대한 나름의 변명이라고 본다.
지난 30년 넘어 내 인생에 직간접적 관여 했던 HP-UX 워크스테이션과 서버는 내게 어떤 추억의 가치를 남겼는가. 직업으로서, 취미로서 그리고 일상으로서 오랜 시간을 옆에 있던 친구 아니 형제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현실의 친구나 형제처럼 늘 옆에 있었지만 무심했다. 하지만 이제 잊혀질지 아니면 그리워질지 모르겠다.